[녹색 불을 다루는 법]
"무기력을 극복하는 법"
작업을 이어 나가는 와중에 한 시리즈를 마무리 짓거나 전시를 마치고 나면 으레 찾아오는 슬럼프가 있다. 번아웃이라고 하기엔 그 정도로 활활 불태우진 않았다는 죄책감이 밀려오지만, 쉼없이 나아갈 기력은 쇠한 상태. 선하나 긋기도 어려운 시간들은 무거운 돌덩이가 되어 어깨를 짓누른다. 팬데믹상황이 어느정도 진정되고 난 시점에 무기력증이 강하게 찾아왔다. 모두들 조금씩 활력을 찾고 밖으로 나설 때 난 여전히 안으로 숨어들고 있어서 일까. 방치한 정원에서 말라 죽어 있는 화초들이 꼭 나와 같았다.
집안에서 키우던 게발선인장이 시들어가는 것을 보고 측은한 마음에 분갈이를 해주고 돌보기 시작했다. 하루가 다르게 생기를 회복하는 것을 보고 웃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식물 키우기에 몰입하게 되었는데 새순이 돋고 뿌리가 자라나고 꽃을 피우는 식물의 에너지가 무기력한 나를 움직이게 해주었다.
식물을 관찰하고 마음에 남는 모습을 그림으로 옮겼다. 그렇게 다시 붓을 잡을 수 있었다.
"식물의 힘"
화원에서 "우유 덤불"(Milk Bush)이라는 식물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가늘지만 단단한 줄기는 카오스상태로 사방으로 뻗어 있지만 나름의 질서가 있고 아름다웠다. 줄기속에 품고 있는 하얀 수액때문에 '우유 덤불'이라는 이름이 생겼다지만 그 액체가 강한 독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독을 품은 엉킨 덤불은 그 자체가 나와 같았고, 혹은 그 안에 숨어 마음껏 소리를 질러도 아늑한 방어막이 되어 줄 것 같았다.
식물의 형태와 색, 그 안쪽을 파고들어 가다 보면, 직면하는 것은 바로 나의 마음의 모양이다. 식물의 힘, 그것은 식물을 통해 나 자신을 관찰하고 키워내게 하는 힘이다.
"불과 물, 마음의 모양"
그림에 등장하는 식물들은 내가 되어 살아있다. 혼란한 감정들을 빠른 붓질로 그어낸다. 그 모양은 숲을 이루기도 하고 때로는 불과 물이 되기도 한다. '불을 지르는' 행위는 현실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까딱 잘못하면 모든 것을 앗아간다. 하지만 마음을 표현하는 의미의 불은 다양한 모양새를 가질 수 있다. 최근 작업에 등장하는 불은 출렁이는 녹색의 나무와 닮았다. 뜨겁게 타오르되, 모든 것을 재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아닌, 자라나게 하는 에너지를 의미한다. 일렁이는 태양빛, 쏟아지는 별똥별의 불꽃에서도 생기를 얻는다.
흘러내리거나 고인 물 웅덩이도 살아 숨쉰다. 식물의 잎과 뿌리를 키워내고 썩은 부분을 흘려 보내며 다시 새로운 생명을 품는다.
"당신의 오늘이 생기 있길 바라요"
뉴스를 보는 것이 참으로 꺼려지는 날들이다. 좋은 일보다 마음 아프고 화가 나는 일들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방향을 잃은 분노와 슬픔은 어디서 위로를 받아야 할까. 빗소리에 숨거나 양파 썰기를 핑계로 울어도 본다. 그리고 매일매일 조금씩 모양을 달리하는 식물을 바라본다. 식멍이라고 이름 붙인, 별 거 아닌 듯한 행위가 일상속에 큰 힘을 발휘한다. 식멍을 하듯, 나의 그림을 보시는 분들이 잠시나마 쉬어 가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적어도 그림 속에선 뭐든 할 수 있으니까.
"붓 털이 다 휘어지도록 물감을 척척 끼얹으며 선도 그어보고, 색의 숲 안으로 들어가 함께 숨바꼭질을 하면 어때요? 마음 안에 녹색의 불을 당겨 보아요. 당신의 오늘이 생기 있길 바라요! "
최나무 작업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