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릭스 발로톤 | Soir aux Andelys , 1924
네비파란? 3점 요약
💡 「회화」로서의 질서를 추구하는 일파
💡 모티브와 주제보다 하나의 평면으로서의 단정함을 요구했다
💡사실을 고집하지 않는, 명쾌하고 아름다운 형태와 색채
네비파 회화의 특징과 대표적인 화가
①이론가의 모리스·드니
네비파의 예술관은, 자연의 빛을 화면상에 파악하려고 한 인상파에 반대해, 화면 그 자체의 질서를 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룹 중에서도 이론가로 알려진 모리스 드니 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회화 작품이란, 벌거벗은 여자나, 전장의 말이라든지, 그 외 어떤 일화적인 것이기 전에, 본질적으로, 어느 일정한 질서의 밑에 모인 색채에 의해 덮인 평탄한 표면이다 "
뭔가 대체물로서의 회화가 아니라 회화로서의 회화라는 이상을 추구한 것이 드니였습니다.
서양의 미술을 지배해 온 역사화에서 시작되어 인상파를 거쳐 다시 상징적인 의미가 담긴 종교적 회화로 돌아가는 운동이 내비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리스 드니 《페로스 길렉의 수욕하는 여자들》 1909년 | 파리 시립 쁘띠 팔레 미술관 소장
②색채의 화가 피에르 보나르
또한, 네비파를 대표하는 화가 피에르 보나르 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회화란 작은 거짓말을 여러 개 겹쳐 큰 진실을 만드는 것이다"
보나르는 유화뿐만 아니라 포스터와 판화에도 뛰어난 색채 감각의 작품을 많이 남기고 있습니다.
드니나 보나르를 시작했다고 하는 중심적인 화가들은 세잔느와 일본의 우키요에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화면 구성을 하고 있습니다.
서양의 것도 일본의 미술과는 다르지만, 어느 쪽의 장점도 도입한 독특한 색채 감각은, 일본에서도 매우 인기가 높은 화가입니다.
피에르 보나르 | La Terrasse à Grasse , 1912
③ 크로와 조니즘의 아버지 에미르 베르나르
베르나르는 프랑스 릴에서 태어나 10세 때 빨리 혼자 파리로 옮깁니다.
폰타반의 땅에서 고갱과의 만남, 그리고 고흐와의 지기 등을 통해 베르나르는 크루아조니즘이라는 예술운동을 제창하게 됩니다.
크로와 조니즘은 굵고 검은 윤곽선과 7 색 정도까지 깎아 떨어진 심플한 색채를 특징으로 그리는 방법입니다.
에미르 베르나르《초원에서 놀는 브레튼의 여자들》1888년
이처럼 네비파는 19세기를 지배하고 있던 사실주의(레어리즘)를 부정하고 예술의 신비성을 주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길을 마련한 것은 그들이 스승과 말씀하신 폴 고갱 외에 오디론 돈 , 조르주 술라 등 포스트 인상파의 화가들이었습니다.
기타 내비파 화가들
④ 온화한 회화 에두아르 부야르
부야르는 다른 네비게이션 화가보다 더 평평하고 장식적인 구성의 경향이 뚜렷한 화가입니다.
그는 실내 정경 등의 친밀한 소재를 선호하고 그려 자신을 "안티미스트"(친밀파)라고 칭했습니다.
평생 독신을 통해 술도 하지 않았던 뷰얄의 회화는, 그 떫은 색조와 함께 온화한 인품을 방불케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에두아르 부이야르 | Deux ouvrières dans l'atelier de couture , 1893
⑤ 네비파 시작 머리 폴 세뤼지에
폴 세뤼지에도 고갱의 사고방식을 파리에 반입해 내비파의 중심이 된 중요한 화가입니다.
폰 타반의 땅에서 고갱과의 만남시에 제작된 《탈리스만》은 크로와조니즘 에 접근한 거의 추상 회화라고도 할 수 있는 영역에 이르렀습니다.
인상파의 화가들에 의해 근대화·도시화·평면화하고 있던 파리의 화단에 다시 종교적 숭고를 느끼게 하는 요소를 가져온 세뤼지에는, 만년에는 신지학에 잠겼습니다. 신지학은 이후 시대에 피트 몬드리안이나 파울 클레이 등의 화가들도 연구에 몰두한 오컬트적인 분야입니다.
폴 세뤼지에《탈리스만》1888년|오르세 미술관 소장
⑥종교가의 폴 랜슨
폴 랜슨도 네비파 의 일원입니다.
세뤼지에나 보나르와 함께 내비파를 견인했습니다만, 다른 화가와는 신지학 이나 마술, 오컬트에 기울고 있었다는 점에서 크게 다릅니다.
만년에는 더 반성직주의와 신화 취미가 현저해졌습니다.
폴 랜슨《그리스도와 붓다》1880년
⑦음양의 화가 펠릭스 발로톤
펠릭스 바로톤 은 스위스 출신의 화가·판화가입니다.
세뤼지에 등이 처음으로 네비파를 형성한 것은 아카데미 줄리안이라는 파리의 미술학교의 커뮤니티 중이었지만, 바로톤은 그 밖에서 참가한 화가 중 한 명이었습니다.
포스트 인상파, 상징주의, 그리고 일본의 우키요에의 영향이 명확하게 느껴지는 스타일로 목판 등을 포함한 독자적인 제작을 했습니다.
의미심장하고 설명적인 요소를 배치한 구도는, 감상자에 의해 여러가지 의미를 베풀 수 있습니다.
음과 양, 명과 암과 같은 이항 대립적인 대비 구조를 기본으로 한 구성으로, 발로톤식 도시화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양식을 만들어 냈습니다.
펠릭스 발로톤 | La charge , 1893
⑧ 네덜란드인 마이엘 데 한
네덜란드 출신의 메이엘 데 한은 암스테르담 출신의 화가로, 병이 걸리면서도 현지에서 미술학교에 다니거나 살롱에 출품 등하고 있었습니다만, 한계를 느끼고 파리에 나옵니다.
거기서, 미술상 그리고 있던 테오도르스 판 고흐와 친해지고, 형의 (나중에 유명해지는) 핀센트 팬 고흐와도 친해졌습니다.
드 한은 폰타반의 땅에서 고갱과 친해지고, 고갱은 그를 모티브로 한 초상화와 목상을 남깁니다.
마이엘 데 한 | Maternité , Marie Henry allaitant son enfant , 1889
⑨ 조르주 라콤부
베르사유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조르주 라콤 부는 에밀 베르나르와 폴 세뤼지에와 만나 네비파의 일원이 됩니다.
라콤부는 화가이면서 조각도 정력적으로 제작해, 내비파 조각 팀에도 속했습니다.
특히 폴 랜슨과는 특별한 우정을 맺고, 둘이서 공동 제작을 하거나 랜슨의 사망 시에는 수상을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조르주 라콤브 | Automne, les Ramasseurs de noisettes , 1894
네비파 성립의 스토리
네비파는 19세기 말 파리에서 활동한 전위적인 예술가의 집단입니다. '나비'는 히브리어로 '예언자'를 의미합니다.
네비파의 탄생의 계기가 된 것은 1888년, 파리의 아카데미 줄리안의 학생감을 맡고 있던 화가 폴 세뤼지에가 브르타뉴를 방문했을 때, 폴 고갱으로부터 지도를 받은 것입니다.
고갱이 어린 세뤼지에와 숲의 사생님을 향했을 때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그 나무는 도대체 무슨 색으로 보일까. 가장 아름다운 파란색을 화면에 놓아라."
아카데미에서 정확한 외계 표현을 가르치고 있던 세뤼지에 있어서는, 고갱의 설하는 대담한 색채의 사용은 충격이었습니다.
세루지에는 그날의 야간 열차로 파리로 돌아와 아카데미 줄리안의 동료인 피에르 보나르, 에두아르 뷰얄, 모리스 드니, 폴 랜슨에게 고갱의 가르침을 전하고 공명한 이들에 의해 내비파 그룹이 형성되었습니다.
그 후, 아카데미 줄리안 밖에서도, 고갱의 친구 알리스티드 마이요르, 네덜란드 출신의 얀 베르카데, 스위스 출신의 펠릭스 바로톤 등 젊은이가 그룹에 참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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